탐정사무소 ‘정원 문화 기획자’ 신지선처럼 한국 정원 감상하는 법

또또링2 0 0 14:56

탐정사무소 낮은 터널처럼 굽은 배롱나무 길을 따라 걷는다. 전남 담양 명옥헌의 초입이다. 가지가 서로 얽히며 만들어낸 어두운 그늘 속을 천천히 빠져나오면, 밝은 빛과 함께 언덕 위 정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무대에 오르듯 정자에 다다른 그 순간,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에 잠긴다. 보통 권력을 드러내기 위해 높은 곳에 건물을 세우지만, 명옥헌의 높이는 묘하게 인간적이다. 기울기의 절묘함 덕분에 이곳에서는 위압감 대신 사색이 깃든다. 한국정원문화연구소 ‘월하랑’ 신지선 대표는 그 이유를 “공간의 모든 배치가 원작자의 연출 의도에 충실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거장의 영화에만 연출 의도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게 아니다. 그 공간을 누렸던 이들의 시점을 경험하고 각자의 해석을 내놓는 것. 이것이 그가 정원을 감상하는 방식이다. 서울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국가유산수리기술자가 된 신 대표는 ‘정원 문화 기획자’로서 정원의 의미를 대중과 나누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그는 완결성 있는 한 편의 시나리오를 쓰듯 정원 탐방 프로그램을 짠다. 도입부터 절정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정원 경관을 향유하는 스토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꺼이 배우를 자청한다.
정원에 오직 ‘포토스폿’ 표지판만 필요하지 않다. 신 대표는 조경가의 일을 “땅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땅 위에 풀어내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만의 고유성을 주목하게 된 이유다. 그에게 정원은 철 따라 고운 꽃이 피는 공간만이 아니다.
최근 펴낸 <당신 곁의 한국 정원>에 그는 “정원은 문화, 경제, 정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예술”이라고 썼다. 그에게 정원은 자연을 ‘꾸민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드러내는 시선의 구조물이다. 따라서 정원 감상은 “돌과 나무, 물이 만들어낸 풍경 이면의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시도”다.
지난 22일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서 만난 신 대표는 관람객들이 자주 놓치는 ‘첫 시선’을 보여줬다. 금천교를 건너 숙장문을 통과한 관람객들은 대부분 서쪽 옆문으로 낙선재에 들어섰지만, 그는 남쪽의 장락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했다. 대문 프레임 안으로 후원의 상량전과 낙선재의 처마가 담겼다. 마치 그림 속 풍경처럼 정제된 구도다. 단지 편리한 동선을 위해 이 역사적인 ‘명화’를 놓치고 지나칠 뻔한 것이다.
조선 24대 헌종이 서재 겸 사랑채로 사용한 낙선재는 정교한 창호와 귀갑무늬 담장, 화려한 후원 화계로 이름났다. 어려서 왕위에 오른 헌종이 이토록 멋들어진 민가를 지은 이유에 대해 신 대표는 “낙선재에서만큼은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정원을 감상할 때 ‘보이는 풍경’보다 ‘보도록 만든 구조’에 주목한다. 민가를 방문하면 반드시 누마루에 올라본다. “그곳이 주인이 가장 오래 머물던 자리이자, 세상을 바라보던 높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건축이 정원과 분리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화계가 만들어지고 마당이 설정된다. 정원을 만든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해 보는 것까지가 정원 감상의 총 러닝타임이다.
혹 ‘올가을 가볼 만한 꽃 정원 정보’를 기대하고 그의 책을 펼친 독자라면 다소 의외일 수 있다. “자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정교하고, 인공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자연스러운” 부석사 석축 같은 돌 이야기부터 펼쳐지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바로 곁에 자연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굳이 예쁘게 정원을 꾸밀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대신 다산을 기원하는 석류, 고매한 인품을 의미하는 사군자 등을 심어 식물의 성품조차 닮고자 했다.
중국 정원이 “연못을 파고 나온 흙으로 산을 쌓는 화려함”을, 서양 정원이 “분수나 조각상 등으로 자연을 인위적으로 통제한 구조미”를 자랑한다면, 한국 정원은 그 반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둘 수 있는 것 또한 안목이에요.” 신 대표는 그렇게 ‘자연과 하나 된 한국 정원’의 미학을 강조한다.
그는 전국의 정원을 찾아다니며 한국 조경의 오래된 흔적을 기록했다. 보길도 세연정, 경주 동궁과 월지, 담양 소쇄원, 구례 운조루, 함양 일두고택, 함안 무기연당 등 30곳을 소개한 그의 책은, 자연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를 탐색한 여정의 기록이다.
비범한 너럭바위가 자리한 흥선대원군의 별서였던 석파정처럼 거대한 자연 암반을 그대로 살린 정원에서 그는 거대한 자연으로 인한 무력감보다 우리 문화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읽는다. 주변 지형과의 조화를 중시해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평가받는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자체로 거대한 한국 정원의 대표인 것이다. 꼭 방문해야 할 한국 정원에 대한 물음에 그가 “창덕궁과 후원”을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응축된 한국 정원의 면면을 돌아보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계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금 사랑’은 유별나다. 백악관 집무실은 컵받침부터 벽난로 선반, 벽면까지 황금으로 번쩍인다. 백악관은 “(미국의) 황금시대를 위한 황금 집무실”이라고 했다. 그의 뉴욕 자택이나 마러라고 별장도 온통 황금빛이어서 잡지 화보에 단골로 등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황금빛 페인트는 진짜 황금을 흉내 낼 수 없다. 그래서 금색 장식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황금은 단순히 고풍스런 색깔 취향이 아니라, 진짜와 가짜가 분명한 ‘권위’ 그 자체다. 스스로를 왕처럼 느끼고, 권력과 지배를 과시하는 ‘브랜드’일 것이다. 예로부터 황금은 ‘권력의 색’이다. 당나라 이래 중국에서도 황금빛 곤룡포는 황제들만 입을 수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국빈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특별 제작한 ‘천마총 금관’을 선사했다. ‘지도자의 강력한 권위와 리더십을 상징한다’는 설명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미국에선 ‘노킹스’ 시위가 벌어지는데, ‘왕의 상이로소이다’ 했으니 속으로 미소 지었을지도 모른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금만 190돈 들어간 최고훈장 무궁화대훈장도 수훈했다.
앞서 일본 방문 때도 ‘리틀 아베’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가 준비한 ‘오모테나시(환대)’엔 ‘노벨 평화상 추천’과 함께 ‘황금 골프공’이 포함됐다. 과거 황금 골프채를 선물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성공 공식을 답습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일 순방은 ‘황금빛 투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각국의 ‘과시적 의전’ 무대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관세나 방위비 증액 압박을 완화하려 매력적인 공세를 펴는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냉정히 보면 ‘강요된 호감’이거나 ‘면전의 환대’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리스 신화 속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는 황금을 너무 사랑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딸마저 황금으로 변하고 말았다. 미국의 황금시대, 즉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가 ‘강요된 호감’으로 가능할까. 지금 세계 각국에서 미국에 대한 평판이 위대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트럼프의 황금 사랑이 정작 ‘위대한 미국’을 굳어버린 황금덩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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