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트 “여기 계신 분들이 다 선량해 보여서 우선 안심이 됩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사단법인 오픈넷 회의실. 가장 연배가 높아 보이는 서동원씨(가명·79)의 말에 좌중에서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12·3불법계엄 이후 전임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입장을 달리한 이들이 모였다. ‘혹시 말다툼이 나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온 시민단체 오픈넷과 불평등과 차별 없는 사회를 고민해온 사단법인 포용사회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한 ‘노년층 유튜브 사용 포커스 그룹 인터뷰’ 자리였다. 미디어 이용 행태,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의 심각성, 정치 양극화를 주제로 자유롭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지난 3~4월 오픈넷의 의뢰로 포용사회연구소가 진행한 ‘정치 양극화와 미디어 이용실태’ 설문조사 참여자 중 대면 인터뷰에 응한 이들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이들과 반대했던 이들이 각각 3명씩 서로를 마주하고 앉았다. 계엄은 잘못이라고 봤지만 탄핵에는 동의하지 않았던 이들로 계엄까지 찬성하는 소위 ‘계몽령’ 지지자들은 없었다.
당시 조사 결과 유튜브 구독자일수록 양 진영의 강성 지지층일 가능성이 크고, 뉴스를 유튜브로 주로 접하는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불복할 의사가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브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어의 추천 알고리즘이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판단과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을 강화하면서 나타난 결과로 해석된다.
참석자들은 이런 알고리즘의 문제점을 알고 나름대로 대응하고 있었다. 윤환민씨(가명·74)는 유튜브를 아예 보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유튜브가 편향적으로 정보를 보여주기 때문에 저는 저 자신을 믿고, 제 사고대로 살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동철씨(가명·71) 역시 윤씨와 마찬가지로 보수 성향이지만 진보 매체 역시 “그들의 심리 상태를 알기 위해” 챙겨본다고 했다. 사실이 아닌 게 너무 많아서 유튜브는 멀리하고 되도록 활자 매체를 선호한다고 했다.
편향성이 강한 콘텐츠를 피하는 방식도 있다. 김진후씨(가명·65)는 “자기 진영의 이해관계를 지나치게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콘텐츠는 가능하면 피해서 본다”고 했다. 강미선씨(가명·66)도 “정치적으로 좌냐 우냐는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나 태도가 중요하다. 자극적인 콘텐츠는 혐오스럽다. 가능하면 정치가가 직접 발언한 것을 페이스북 등에서 찾아본다”고 말했다.
황연주씨(가명·68)는 “유튜브에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고, 나 자신을 소모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선 후엔 (정치 콘텐츠를) 안 본다”고 말했다. 대신 재활용 작품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을 골라 보는데 주로 검색어를 입력해 ‘발견’한다. 알고리즘 추천에서 벗어나 자기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는 콘텐츠를 찾아 구독하면 해로운 콘텐츠를 볼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는 차원이다.
정치적 양극화에 대해서는 진보·보수 관계없이 모두 우려를 표했다. 강씨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트라우마로 실제보다 계엄을 더 과하게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고 보고 탄핵에는 반대했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탄핵을 찬성하는 분에게) 꺼내면 굉장히 공격적으로 얼굴색이 돌변했는데, 정치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걸 뼛속 깊이 느꼈다”고 말했다.
황씨 역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배에게 설문조사 참여를 권유하던 중 ‘탄핵 찬성 쪽으로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그는 “다르다고 인정하지 않고 ○○ 지지는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말하는 것에 힘들고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가족이나 친구라도 정치 이야기를 함부로 하기 어려운 시대다.
김씨는 “두 번 연속 탄핵은 국가적으로 좋지 않다고 보고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탄핵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 내란은 탄핵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제대로 된 보수라면 계엄에 반대해야 했는데 어느 순간 진영논리로 모두 빨려 들어가는 걸 보면서 슬프고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의견은 갈렸다. 강씨가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 10명 중 8명은 계엄을 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고 말하자 김씨는 “불법 계엄을 단죄할 방법은 탄핵밖에 없는데 반대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응수했다.
황씨는 선거에서 이긴 사람이 모든 걸 차지하는 구조, 자극적인 콘텐츠 제작을 부추기는 유튜브의 수익구조가 정치적 양극화를 강화하고 있다고 봤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약속하고, 공천을 받기 위해 유력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하고, 유튜브 매체는 후원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방송을 안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대화 중 윤씨가 자신의 카톡방에 전달된 뉴스를 보고 물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조희대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총리 회동 의혹의 근거인 녹취 제보가 인공지능(AI)으로 조작된 것이냐는 것이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허위조작정보로 옮겨갔다.
오경미 오픈넷 연구원이 AFP통신의 팩트체크 사이트에 올라온 한국 관련 기사를 소개했다. 지난 8월25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사진이 SNS에서 반복적으로 공유된 건을 검증한 기사였다. 해당 사진은 ‘국격이 추락했다’는 정부 비판 메시지와 함께 퍼졌는데 확인 결과 원본 사진에 셀카봉을 합성해 만든 것이었다.
한편 AFP통신은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 ‘정신 나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권 지지 성향의 SNS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윤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는 내용으로 퍼졌는데, 회담 전체 영상을 확인하면 당시 발언은 잭 스미스 전 특별검사를 지목한 내용으로, 윤 전 대통령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본 적이 있다”거나 “요즘 정말 심각하다”, “사실인 줄 알았네”라는 반응이 나왔다. 황씨는 “저렇게 조작한 사진으로 피해를 받은 사람은 공인만이 아니라 개인도 정말 많다”고 했다. 강씨는 “연예인들도 조작된 사진이나 정보로 큰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져도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본다”고 성토했다. 김씨는 양쪽 진영의 일부 매체를 언급하며 “음모론에 가까운 방송을 하면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면 바로 교정하고 사과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사실을 검증하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강씨는 “알고리즘으로만 정보를 접하다 보면 잘 모르는 사람은 확증편향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균형 잡힌, 건강한 정보를 줄 수 있는 매체가 없다는 건 지지하는 정당을 떠나서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젠 (유튜브에 비하면) 종편도 훨씬 괜찮은 방송처럼 보인다”면서 “주류 언론이 제 역할을 해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 양극화로 인한 혼란을 타개할 방안은 ‘민주주의 최저선’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하거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일은 절대 해선 안 된다는 데 보수와 진보 모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민주시민 교육이 광범위하게 일어난다면 적어도 서부지법 난동과 같은 치명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대화에서는 일부 사안에서 이견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윤씨가 포문을 열었다. “가장 알고 싶은 게 하나 있다. 5·18국가유공자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보수 진영이 자주 제기하는 문제이다. 그는 “지인 중에 (광주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유공자인 경우도 있다”면서 “떳떳하다면 공개하기 어려운 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법원과 국가보훈처는 5·18국가유공자명단은 유공자와 유족 개인의 신상 정보 노출로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위험이 크다고 판단해 지속해서 비공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공개하는 독립유공자를 빼면 고엽제와 월남전 참전, 특수부대 등 대부분 국가유공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진행을 맡았던 유종성 포용사회연구소 소장(연세대 행정학과 객원교수)이 개입했다. “제가 5·18 유공자예요. 5·18 진상규명 시위를 배후조정했다는 이유로 합동수사본부에 두 달 동안 끌려간 적이 있다”면서 광주에 있지 않아도 유공자가 된 자신의 사례를 들었다. 정치적 신념, 정당 가입, 종교, 건강 등에 관한 정보는 ‘개인정보 보호법’에서 ‘민감정보’로 분류되고, 원칙적으로 공개 또는 처리가 엄격하게 제한된다는 점도 설명했다.
김씨는 “공개하기 어려운 걸 공개하라면서 일종의 개인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씨는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으니 개인정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고, 강씨도 “이미 공개한 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인신공격으로 어떤 직접적인 피해를 받았나”라고 반문했다. 김씨는 “그럼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 명단도 다 공개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유공자 공개’라는 요구 안에는 ‘나는 못 믿겠어’라는 마음이 깔린 거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최근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려를 표한 ‘혐중시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김씨는 “우연히 결혼식이 있어서 명동에 왔다가 시위를 눈앞에서 봤다. 중국인을 비롯해 외국인이 많이 있는데 그 앞에서 ‘차이나 아웃’을 외치는데 정말 못 봐줄 정도였다. 대단할 정도로 인권을 무시하는 것이고, 한국을 찾은 사람들에게 오지 말라고 하는 건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명동을 막으니 대림동으로 갔는데 그런 식으로 우리 자신의 이익을 해치는 건 안 된다”고 말했다.
강씨는 “중국 사람들이 한국 부동산을 저리로 대출을 받아 사고 있다. 외국인 특혜는 다 받고, 벌어들인 이익은 다 중국으로 간다. 친한 조선족 사람이 자기도 중국인이 모여 사는 동네는 무서워서 못 간다고 한다”고 반박했다. 강씨가 중국인이 무비자로 대거 들어온다고 덧붙이자 김씨는 우리도 무비자로 중국에 간다고 말했다.
이견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작은 ‘깨달음’을 공유하기도 했다. 오씨는 “저도 유공자 명단 공개 입장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공개 이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공격을 받는다고 느낀다는 생각을 못 해봤다”고 말했다.
대화의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데는 모두가 공감했다. 대화의 중재자로서 언론의 역할도 강조했다. 윤씨는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위정자가 이런 토론을 통해 상호발전할 수 있는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씨는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수백 번 토론해야 한다, 작은 규모가 아니라 전국 단위의 토론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보수와 진보 매체가 공동으로 이런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고 토론 속에서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이나 자세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했다.
황씨는 “기존 미디어가 제 역할을 못 하거나 혹은 설 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SNS가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인데, 이런 토론이 그 부작용을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바위를 뚫는 낙숫물 같은 역할을 계속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시교육청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113초 영화제’를 개최했다. 113초는 일제강점기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1929년 11월3일을 의미한다.
광주시교육청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은 2일 ‘학생독립운동 113초 영화제’ 대상에 <이름 없는 소녀들>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113초 영화제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11월3일 일어난 학생독립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기억하기 위해 마련됐다.
학생들은 학생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113초 안팎의 영상을 찍어 응모한다. 올해 영화제는 전국에서 36편이 접수됐다.
국가보훈부 장관상인 대상을 수상한 <이름 없는 소녀들>는 김해한일여고 2학년 조연희·김성희·문지영·송윤채·조연하 학생이 출품했다. 이 작품은 학생독립운동에 나섰던 여학생의 이야기를 또래 학생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교실에서 모욕을 당하고 분노를 삼키던 소녀는 1929년 11월3일 친구들과 함께 태극기를 품고 시위에 나선다. 11월5일 소녀는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게 되지만 굴하지 않는다. 작품은 당시 여학생들의 결연한 독립 의지와 단합된 행동을 감동적으로 재현해 호평을 받았다.
대상을 수상한 김해한일여고 학생들은 “이름 없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참가했는데 큰 상까지 받게 돼 영광이다”며 “이번 영화제를 통해 역사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고 알리는 데 적극 참여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우수상은 서울중앙중학교 정예림 학생팀의 <두 소녀>와 학교밖 청소년인 황수인학생의 <1929 그날의 이야기>가 차지했다.
<두 소녀>는 학생독립운동이 실존인물인 이광춘·박기옥의 용기를 담았다. 검은 종이 위에 흰 펜으로 실시간 드로잉을 진행한 <1929 그날의 이야기>는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과 저항의 상징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김용일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장은 “국내외 많은 학생이 영화제에 참가해 역사의식과 창의성을 발휘했다”며 “우리 미래 세대가 역사의 소중함을 잊지 않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주간경향] 현직 부장검사가 상급자인 검사 두 사람을 감찰해달라는 진정을 제기했다. 발단이 된 건 쿠팡 일용직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못 받은 사건이다.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A 부장검사의 뜻과 달리 쿠팡은 무혐의 처분됐다. A 부장검사는 상급자들이 쿠팡을 봐주려고 일부러 사건의 핵심 쟁점을 못 본 체했다고 의심한다. 상급자들은 쿠팡을 봐줄 생각이 없었고, 부장검사가 허위사실로 무고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하급자가 서로를 감찰해달라며 진정을 제기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검찰에서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는 것 이외에도 이 사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 제도권이 일용직과 대기업의 분쟁을 다루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은 노동집약적인 사업을 하면서 일하는 사람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은 최소화하려 했다. 그전까진 일용직에게 지급하던 퇴직금을 아끼기 위해 쿠팡은 2023년 규정을 바꿨다. 퇴직금을 못 받게 된 적잖은 수의 일용직이 고용노동청 문을 두드렸지만, 대부분의 일선 노동청은 쿠팡의 퇴직금 미지급이 정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단 한 곳의 노동청만이 압수수색에 나서 쿠팡에 위법소지가 있다고 보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그 사건을 이어받은 A 부장검사가 상급자들과 갈등을 빚은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못 받은 퇴직금은 1인당 평균 200만원가량에 불과했다.
‘쿠팡을 의도적으로 봐줬다’는 의혹은 상급자들의 주장대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상급자들은 ‘민사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는 등 이 사건에서 검찰의 역할을 최소화하려 했다. 이는 일용직들에게 ‘자력으로 구제하라’고 말하는 것이자, 퇴직금 규정을 일방적으로 변경해도 ‘기업에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고용 관계의 양극단에 있는 일용직과 대기업의 분쟁을 수사하는 공권력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수사 무마만 아니라면 최소한의 개입은 정당한 것일까. 어쩌면 검찰개혁은 약자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 공권력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B씨는 2022년 11월부터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그러다 2023년 중순 안팎에서 나도는 흉흉한 소문을 들었다. 쿠팡이 더는 일용직에 퇴직금을 안 준다는 얘기였다. B씨는 ‘법적으로 안 줄 수가 없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리고 일 시작한 지 약 1년 반 만인 2024년 4월 일용직 생활을 정리했다. 그런데 퇴직금이 안 나왔다.
일용직이라서 퇴직금을 안 준 것이 아니다. 쿠팡은 취업규칙을 변경한 2023년 5월 26일 이전까지는 일용직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했다. 법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퇴직금을 받으려면 1년 이상을 근무해야 한다. 매일 꼬박꼬박 출근한 사람만 퇴직금을 받는 것도 아니다. 한 주에 평균 15시간 이상씩 일했다면 족하다. 1년 넘게 일하긴 했는데 중간에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한 기간이 있다면 계산은 어떻게 될까. 퇴직금은 지급하되, 15시간을 못 채운 기간은 퇴직금 산정에서 뺀다. 취업규칙을 바꾸기 전에는 쿠팡도 이 같은 방식으로 일용직에게 퇴직금을 지급했다.
2023년 5월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쿠팡의 계산법이 바뀌었다. 중간에 주 15시간을 못 채운 기간이 있다면, 그 전에 얼마나 일했든 그다음부터는 출근 1일 차로 쳤다. 일한 기간이 ‘리셋’되는 셈이다. B씨는 바뀐 계산법 때문에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B씨가 쿠팡에서 일용직으로 일한 기간은 총 520일인데 그중 45일을 주당 평균 15시간 미만으로 일했다. 그런데 주 15시간을 못 채운 시기가 2023년 7월과 같은 해 10월이었다. 바뀐 규칙에서 B씨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 일용직으로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니었다.
B씨는 고용노동부 부천지청에 쿠팡을 상대로 진정을 넣었다. 그는 “퇴직금을 안 준다는 얘기는 소문으로만 들었지 회사에 설명을 들은 것도 없다. 못 받은 금액은 200만원가량인데, 적다면 적은 금액이고 진정 같은 걸 하려면 스트레스도 받아서 안 하는 게 낫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의) 태도가 너무 일방적이어서 화가 났다”고 했다. B씨처럼 별안간 퇴직금을 받지 못하게 된 이들이 노동청에 진정을 넣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매년 20여건가량 접수되던 쿠팡을 상대로 한 퇴직금 진정은 취업규칙이 변경된 2023년 90건까지 늘었다(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진정 사건에 대해 내사를 벌인 일선 노동청들은 쿠팡의 퇴직금 미지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일용직들이 하루 단위로 계약을 맺고 일하고, 다음날 출근할지도 불확실하니 계속 일한다는 개념이 없다고 봤다. 1년 일해야 발생하는 퇴직금도 자연히 주지 않아도 된다고 본 것이다. 기존에 쿠팡이 일용직에게 퇴직금을 지급한 것은 쿠팡이 자율적으로 일용직들에게 베푼 혜택이라고 봤다. 이 같은 판단 아래 노동부 서울동부지청, 안산지청, 성남지청 등이 사건을 내사 종결 처리했다. 이렇게 쌓인 쿠팡에 대한 면죄부는 검찰 불기소 처분의 근거로 사용되는 등 두고두고 사건의 발목을 잡았다.
노동법에는 대법원 판례 등으로 확립된 대원칙이 있다. 형식보다 실질을 보라는 것이다. 일용직이든, 계약직이든, 하청 노동자든 그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어떤 방식으로 일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따진다. B씨 등의 사건을 맡은 노동부 부천지청만이 이 점에 주목했다. 부천지청 수사를 거치면서 사건의 쟁점이 뚜렷해졌다. 하나는 ‘일용직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였고, 다른 하나는 ‘쿠팡의 취업규칙 변경이 적법한지’였다.
노동부 부천지청은 쿠팡 일용직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단이 근거였다. 건설 일용직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일용직의 손을 들어줬다. 일용직이라도 같은 조건으로 반복해서 계약을 맺고 일했다면, 퇴직금을 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B씨 등의 사건을 넘겨받은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A 부장검사와 지휘부의 갈등 끝에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면서, 쿠팡 일용직들은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해진 공사 기간 안에서 일을 계속할 것이 예정된 건설 일용직과 쿠팡 일용직은 다르다고 본 것이다. 검찰 부천지청은 불기소 결정서에서 쿠팡 일용직은 누구든 휴대전화 앱을 통해 채용을 신청할 수 있고, 1일 단위로 계약을 맺으며, 얼마든지 다른 업종에서도 근무가 가능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검찰 부천지청의 해석은 적어도 다수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쿠팡 일용직 퇴직금 문제가 불거지자 8곳의 법무법인에 법률 자문을 의뢰했다. 김주영 의원실이 확보한 법률검토 결과를 보면, 8곳 중 7곳의 법무법인이 쿠팡 일용직도 퇴직금 지급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상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건설업종처럼 공기가 정해져 있진 않지만, 쿠팡은 일용직 비중이 상시 4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난다. 일용직들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게 아니라 상시적인 필수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기간제건, 무기계약직이건, 일용직이건 하는 일도 같다.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봐야 한다”고 했다.
검찰이 일용직은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더라도, 쿠팡의 취업규칙 변경이 정당한지를 제대로 검토했다면 결론은 달랐을 수 있다. 그러나 검찰 부천지청 지휘부는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바뀐 취업규칙은 종전보다 퇴직금 지급 대상 일용직을 줄이는 내용이다. 이처럼 회사가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바꾸는 걸 ‘불이익 변경’이라 한다. 회사가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은 경우에만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가능하다. 쿠팡은 일용직들의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동의서를 놔두고 단 하루 만에 9000여명의 동의서를 받았다. 뭐가 바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쿠팡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심사한 노동부 서울동부지청은 형식적인 요건을 갖췄다고 보고 취업규칙 변경을 승인했다. 이는 다시 검찰의 무혐의 근거로 활용됐다.
이 역시 대법원 기존 판례에 반한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다룬 사건에서 대법원은 노동자 과반의 동의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봤다. 회사가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들끼리 회의를 거쳐 동의해야 취업규칙 변경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쿠팡은 일용직들이 회의할 시간이나 장소를 제공하지 않았고, 일용직들끼리 의견을 교환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노동부 부천지청은 지난해 9월 A 부장검사가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쿠팡 내부 자료를 확보했다. 자료에는 “일용직 사원들에게 연차, 퇴직금, 근로기간 단절의 개념을 별도로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으며, 이의제기 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개별적으로) 대응함”이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쿠팡이 의도적으로 퇴직금 규정 변경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음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검찰 부천지청 지휘부는 이 내용을 대검찰청에 보낸 1·2차 수사보고서는 물론, 불기소 결정서에도 담지 않았다. 법률가의 판단에 따라 결론에 대한 의견은 엇갈릴 수 있지만,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주요 증거를 공식 문서에 포함조차 시키지 않는 것은 석연찮다. 이는 초유의 검찰 내부 갈등의 발단이 됐다.
지휘부 중 한 사람인 엄희준 당시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은 “(해당 내용을 대검 보고서에) 빼라고 지시한 적 없다. 지청장이 세세하게 다 알 수 없다. 2차로 대검에 보고서를 보내기 직전에 부장검사가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5장짜리 문건을 차장검사에게 보냈고, 그대로 대검에 전달했다. 빼라고 지시했다면 왜 보냈겠느냐”라고 했다. 부장검사의 의견은 검찰 내부 메신저로 대검에 전달됐고, 대검에서 함께 검토됐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검 공식 보고서의 취지와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으로, 공식 보고서에 담기지도 않은 A 부장검사의 의견이 비중 있게 검토됐을 가능성은 작다.
A 부장검사의 또 다른 상급자인 김동희 당시 부천지청 차장검사는 “쿠팡의 취업규칙 변경이 형식적으로 과반수 동의를 얻었고, (노동청에서) 유효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압수수색 결과가 (취업규칙 변경이) 실질적으로 무효라고 주장할 만한 정도의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고 봤다. 형사처벌은 범죄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변경된 취업규칙을 근거로 퇴직금 지급 여부를 결정했다면 범의는 없는 것이다. 취업규칙 변경이 무효라고 다투면서 퇴직금을 청구한다면 민사에서 다룰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일용직 노동자가 거대 로펌이 대리하는 쿠팡과 소송전을 벌이기도, 압수수색 등 공권력 도움 없이 증거를 모아 승소하기도 쉽지 않다. B씨는 “현실적으로 200만원을 받자고 민사를 할 의미가 없다. 변호사 비용이 더 들 거다. 상대는 쿠팡과 대형 로펌인데 민사로는 쿠팡을 상대할 수가 없다”고 했다. B씨는 노동부 부천지청이 기소 의견으로 B씨의 사건을 송치하면서 법률구조공단의 무료 법률 조력을 받게 됐고, 이를 통해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현재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민사소송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B씨는 검찰 처분에 불복해 서울고검에 항고했다. 최강연 노무사는 “노동법은 사회법(개인 간 관계에 국가가 개입해 약자를 보호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노동청 감독관이나 일선 검사들에게 이런 인식이 부족하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번 사례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일도양단으로 ‘돈이면 민사, 때렸으면 형사’ 단순 논리로 접근하니 이런 문제가 생기면 노동자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A 부장검사가 ‘쿠팡 봐주기 의혹’과 관련해 대검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김주영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A 부장검사의 진정서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쿠팡을 대리한 김앤장 변호사는 김동희 차장검사와의 개인적 친분을 과시했고, 김동희 차장검사는 쿠팡에 대한 노동청의 압수수색 직전 A 부장검사에게 전화해 압수수색 여부를 확인했다. 엄희준 지청장은 A 부장검사 휘하의 사건 주임검사를 따로 불러 ‘무혐의’ 처분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김동희 차장검사는 “(김앤장 변호사는) 검사 출신 연수원 동기일 뿐이다. 연수원 동기를 위해 직을 걸고 대검에 허위보고하면서 봐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쿠팡 압수수색 당일 A 부장검사와 공소시효가 임박한 선거 사건 관련해 이야기하느라 전화를 했지만, 쿠팡 압수수색 사실은 알지도 못했다”고 했다. 엄희준 지청장은 지난 9월 26일 허위사실로 무고를 하고 있다며 A 부장검사를 감찰해달라는 진정을 제기했다. 엄 지청장은 “주임검사가 기소 의견인데 무혐의하라고 한 적 절대 없다. 주임검사가 무혐의 의견이었기에 신속히 정리하라고 했을 뿐 뜻을 꺾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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